Saturday, February 20, 2016

겸제원

겸제원(兼濟院)제도의 창설
박석무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06/11/13 [09:52]

어떻게 해야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어떻게 해야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만 생각하다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다산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해가 지면 모든 새들은 다 집으로 찾아가는데 들어갈 집이 없고, 해가 뜨면 연못의 고기도 먹을 것을 바라는데 배고픔을 물어보는 사람이 없으며, 주변에서는 제각기 부모 형제 처자가 떠들썩하게 지껄이며 서로 즐기는데 나는 가까이 지낼 사람이 없다. 혹은 혹심한 겨울 추위와 지루한 여름 날씨에 질병으로 신음할 때에는 가족의 시중을 받는 종보다 못하니, 이 세상에서 괴로움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題兼濟院節目後」)
이런 ‘나’는 누구일까요. 죄인이 되어 낯설고 물선 타향땅에서 귀양살이하는 사람들의 신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산이 36세 때에 황해도 곡산(谷山)의 원님으로 부임하여 8~9명의 유배객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보고서, 마침 자신이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로 발탁되자 어떤 일로 충청도 해미(海美)로 10일간 귀양살이 때의 생각이 떠올라, 유배객도 편히 지내고, 그곳 주민들이 유배객 때문에 당하는 고통까지 해결하여, 유배객과 주민 양쪽이 모두 구제받을 수 있는 ‘겸제원’제도를 새로 창설하면서 그 배경과 효험을 설명하는 글에 나오는 이야기가 너무나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무거운 죄를 짓고 귀양 사는 사람도 기본권은 보장받아야 마땅하거늘, 항차 바르지 못한 재판으로 억울한 유배살이를 하거나, 모함으로 죄 없이 유배살이 하는 사람의 불편을 덜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유배객도 대접받는 제도를 만들자는 뜻에서 창설한 것이 ‘겸제원’이라고 다산은 설명했습니다.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이해하고, 남의 불편이나 억울함을 자신의 것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아량과 포용력을 지녀야만 지도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산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추위는 다가오는데 노숙자들이나 갑자기 화란을 당해 불행에 처한 사람들,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함께하는 그런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다산의 사려 깊은 행정조치를 기억해 보았습니다.
[제휴 :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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